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아름다웠던 나날들

이어받기

들국화가 만발했던 우리의 80년대를 추억하며, ‘그 때 그 시절로 통용되는 우리의 지난 어느 날을 추억해본다. 어렸던 그때, 뭘 몰라도 한참 몰랐던 그때. 하지만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었고, 솔직할 수 있었던 그때를 다시 돌이켜본다.

 

 

복고가 인기다.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를 복고의 인기는 패션, 음악,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를 넘어 공연, 문학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연한 인기의 산물쯤으로 여기고 말았었는데, 그 인기가 지속되니 확실히 트렌드인가 싶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하지 않나. 오늘의 우리는 왜 지난 날을 그리워할까. 왜 그토록 애닳게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울고 웃는걸까.

 

 


응답하라 1994

정보
tvN | 금, 토 20시 40분 | 2013-10-18 ~
출연
고아라, 성동일, 이일화, 정우, 유연석
소개
1994년을 배경으로, 지방 사람들의 눈물겨운 상경기와 농구대잔치, 서태지와 아이들 등의 사회적 이슈를 담은 드라마

 

복고를 빚어내는 오늘들

 

지난 주,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응답하라 1994>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199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다양한 캐릭터의 군상을 통해 1994, 그 찬란했던 캠퍼스의 기억을 되살린다. 벌써 스무해나 지나버린 그 때, 돌이켜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킬것만 같았던 김일성이 죽었고, 그 혼란스러움이 무색하게 젊은이들의 문화는 꽃폈다. 문화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서태지가 획기적인 음악을 가지고 텔레비전 가요프로그램 무대에 섰으며,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X세대, 혹은 오렌지족이라 칭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갔다. 전국 최고 기온 38.4도라는 괴물같은 더위가 우리 모두를 괴롭히던 그 때, 그 이글이글 타오르던 태양과 같이 우리의 젊은 날, 그 어렸던 날도 아지랑이가 되어 타오른다.

 

생애 처음으로 나간 과팅에서 해태와 삼천포가 좀 더 능글맞게 마주앉은 그녀들을 대했더라면, 더 많이 놀고, 오늘 노는 것에 대해서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스무해가 지난 오늘 그 때의 그들을 추억함이 이렇게 애틋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 몰랐기 때문에, 지금 아는 걸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그들의 스무살은 아름다웠다.(영상= tvN <응답하라 1994> 2화 중에서)

 

<응답하라 1994>20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비단 그 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10년 전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30년 전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토록 갈망했던 스무살, 대학생이라는 신분, 서울이라는 낯설고도 큰 도시.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화학작용을 일으키자 청춘 특유의 향수가 만들어진다.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의 진정한 묘미는 시대의 고증을 찾아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감성과 정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척박하고 낯설기만한 서울은 두려운 현실이자 동시에 개척해 나가야 할 미래이기도 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줄곧 들으며 자라온 그들에게 그곳으로의 입성은 성장이며, 자립을 뜻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는 곳. 스무살의 우리는 그렇게 꿈을 꾸고 있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스무 해가 지난 오늘, 새삼스럽게 그 때의 그 날들이 떠오르는건 오늘의 내게 꿈이 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게될지그 모든 것이 막막하고 두렵기만 했던 그 때, 우리는 꿈을 꿀 수 있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릴 수 있는 그림들이었다. 맞다. 어쩌면 그때의 우리는 새하얀 캔버스와 같았을지 모르겠다. 이미 지워지지 않는 유화물감들이 덕지덕지 발라져있어 어떻게 손을 봐야할지 모르겠는 오늘과는 확실히 달랐다. 지난 날들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류시화 시인의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를 읽으면서는 괜히 마음 한켠이 뭉클해져 온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때의 우리가 빛났던 것은 이 모든 것들을 몰랐기때문일 것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그 날들의 우리는 그토록 순수하고, 빛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류시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이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문화웹진 인터미션] 구독하기

Trackback 0 Comment 0
prev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