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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31 히치콕의 새
  2. 2015.07.31 이열치열 매운 맛집 BEST5 (1)
  3. 2015.07.31 완독의 즐거움 BEST5
  4. 2015.07.31 흡혈영화 Best3
  5. 2015.07.31 서늘한 추리 소설 걸작 BEST3
  6. 2015.06.30 취해버리고 싶은, 취해지지 않는
  7. 2015.06.30 영원히 지속되는 로맨스
  8. 2015.06.30 브라더의 다양한 변주
  9. 2015.06.30 B급 브로맨스
  10. 2015.05.31 피의 복수, 가문의 비극

히치콕의 새

  여름이 힘들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덥다는 것? 피부가 끈적거리고, 몸 안에서는 계속 열기가 차올라서 신경이 쓰인다는 것? 그래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 여름은 늘 그렇게 많은 시간을 빼앗아 간다. 생각을 멈추게 하고, 일상의 흐름을 느리게 만든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들을 생각해 내는 이유는 더위가 그만큼 일상을 방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가운 것을 먹고, 마시고, 생각한다. 차가운 것을 먹고, 마시고, 생각하며, 차가워지려 한다. 혀끝과 위속을 차갑게 식히고, 마음 깊은 곳의 온도까지 내린다. 



 공포를 찾는 건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공포는 살갗에 달라붙은 끈적끈적한 열기를 무시하게 할 만큼 놀라운 집중력을 만들어낸다. 무섭고, 낯설고, 두려운 것. 그것은 더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공포가 가장 두려운 것은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감상물일 수 있는 꽃 한 송이가, 어떤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일 수 있듯 말이다. 만일 당신이 지금 당장 끔찍한 공포를 체험하고 싶다면, 가장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떠올리면 된다. 비밀이 폭로되는 것? 따돌림을 당하는 것? 빈곤에 처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 그 무엇이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맞이했을 때, 공포는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마음 깊은 곳이 불안해질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공포가 개인의 두려움에서 발현된다는 걸 알았던 영화감독이다. 물론 그의 영화는 현대 공포/스릴러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무수한 기법적 요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카메라가 비추는 그 형상은 인간의 공포 그 자체를 향해 있다.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히는 <새>를 기억하자. 


  


  데프니 듀 모리에의 <새>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갑작스레 나타난 새떼의 공격을 충실히 묘사한다. 새들은 나타나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공격하고 목숨을 위협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사람들이 새를 두려워한다는 것이고, 새는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맹렬하게 부리를 들어올린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집 안으로 숨어들어 나를 지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 집 안에는 새만큼 무서운 무언가가 존재한다. 시어머니, 의심스런 이웃들, 믿을 수 없는 남자, 그리고 갇혀버린 ‘나’  

 <새>가 섬뜩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새’는 공포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거대한 배경일 뿐이다. 그것은 여름이다. 뜨겁고 정신을 분산시키고, 아무 것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 차가운 무언가를 찾게 만드는 것. 그러나 그 열기를 피해 도망간 곳에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공포가 있다. <새>의 집은 폐쇄되었다. 나가면 새떼들이 자리하고 있고, 집 안에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낯선 눈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나’를 싫어한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아들을 빼앗길까봐 눈치를 주고, 동네 사람들은 ‘나’가 새들을 몰고 왔다고 의심한다. 어쩌면 ‘나’(이 영화에서 그녀의 이름은 멜라니이다.)는 바로 그것을 두려워했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결코 얻지 못하리라는 것. 그러나 그 감정에 사로잡혀 도망가지도 못하고 작은 집에 갇혀 학대 당하듯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나 그리고 그녀는 두려워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여름의 그림자 아래 감추어 두었던 그녀의 진심일지 모른다. 


히치콕은 그 불안을 끄집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 순간 깜짝 놀라거나, 시선을 감추게 하는 것으로 공포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 겨우 그 정도로, 여름의 맹렬한 더위는 잊혀 질 수 없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진짜 공포. 그것은 미쳐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멜라니는 결국 미쳐버린 것일까, 아니면 공포를 피하기 위해 또 다른 집을 찾아 숨어버린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 멜라니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결코 어느 순간에도 나의 공포를 직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에 짓눌리거나 매순간 축축한 기분에 젖더라도 말이다. 나의 공포에 비하면 여름은 충분히 즐길만한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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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치열 매운 맛집 BEST5

  바야흐로 1992년 국민학교(오늘날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 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청량고추를 듬뿍 넣은 매운 라면을 먹게 되었을 때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와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듯 나 역시도 그 후로부터는 매운 맛집을 탐방하는 모험가가 되어있었다. 이번 칼럼 주제가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는 나만의 노하우’ 여서 이번 기회에 이르러 나의 매운 맛집 탐방기를 통한 베스트 5를 나열해볼 수 있게 되어 묘한 설렘이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무더운 여름, 이열치열로 더욱 화끈하게 여름을 불태우는 매운 맛집 베스트 5를 소개한다. 참고로 베스트 5의 순위는 매기지 않았다. 강추할 곳 다섯 곳만을 선정해보았다. 그럼 기대하시라!  


1. 동아냉면 (빨강냉면)





 필자는 냉면광이다. 여름철에 빛발하기 시작하는 냉면을 필자는 해마다 3월 말부터 먹기 시작해서 11월 까지는 꾸준히 먹어왔다. 그래서 냉면 맛집이라면 인터넷블로그를 숱하게 찾아보면서 마음에 드는 가게가 보이면 주저 없이 향했다. 그 중에서도 냉면 베스트 1, 2는 둘 다 빨강냉면이었다. 냉면의 시원함과 빨강냉면의 매운 맛. 시원함과 더불어 이열치열효과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후루루 짭짭.’ 하면 머릿속이 상쾌해져서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 스트레스가 쫙쫙 달아나는 그 느낌을 언제나 받았다. 그리고 소개하는 이 동아냉면 집 같은 경우는 서브메뉴로 고기만두를 파는데 화끈하고 시원한 빨강냉면 한입 먹고 파르르 떨릴 때 따끈한 고기만두 한입 먹으면 온 몸이 녹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 느낌. 천상계다. 흐흐. 말이 필요 없다. 한 번 가봐라. 두 번째부터는 자동으로 가게 될 것이다. 동아냉면은 매운맛집 베스트 5 중 유일한 체인점이다. 체인점 중에서도 필자의 입맛으로는 숙대입구의 동아냉면이 으뜸이다. 숙대입구역으로부터 약 5분 거리에 있다. 하지만 한번 먹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숙대입구로부터 4분, 3분 거리로 시간이 단축될 것이다. 왜냐, 다리는 자신도 모르게 동아냉면으로 향하고 있을 테니까.



2. 매운 짬뽕(신길2동)



  필자는 어렸을 적 신길동에서 자랐다. 필자가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20대 초반의 대학생 시절 때 역시 언제나 친구들과 모이면 ‘매운 짬뽕’을 도전해보자며 매운 짬뽕을 파는 신길동 포장마차에 향했다. 이곳은 필자의 눈으로 보아온 세월만 해도 20년가량 된 곳이다. 아니면 더 된 곳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이 집의 짬뽕의 매운 맛을 10대 때부터 봐왔는데 무려 15년가량이 지난 지금은 전국 매운 맛집 중에서 거의 으뜸으로 매겨지고 있다. 15년이 지난 요즘에 이르러서야 말이다. 슬프다. 15년 전에도 뇌가 미치는 맛이었건만... 아무튼 15년 동안 필자가 먹어온 이 매운 짬뽕을 한 글자로 말하자면 ‘광(狂)’ 이다. 진짜 면발 한입 국물 한 모금 마시면 진하게 맛있다. 두 모금 마시면 정신없다. 세 모금 마시면 미친다. 그 다음부터는 온 몸에 땀이 줄줄. 묵혀왔던 스트레스가 아주 그냥 확! 날아가는 느낌이다. 손은 자동으로 모터가 달린 마냥 부채질을 하고, 혀는 바들바들 강아지처럼 ‘헤헤’ 거리게 된다. 혀가 무수히 진동한다. 그 때 혀를 진정시켜줄 단무지를 한 입 깨물면... 상쾌함이 말로는 표현 안 될 정도다. 필자는 여기서 짬뽕 국물을 80프로까지 마신 적이 있다. 매운 짬뽕을 백번 넘게 먹어봤지만 80프로를 마신 것은 현재까지는 내 생애 최고기록이다. ‘에이, 그걸 왜 못 마셔? 너 그러고도 남자냐? ’ 했던 상남자 친구들, 그리고 진짜 상남자 선배님들, 선생님들을 모시고 간 적이 있다. 80프로를 마신 것은 경이로운 기록이라는 것을 이분들도 인정을 했다. 아직까지 매운 짬뽕을 국물까지 싹 다 비운 사람은 전국에서 100명이 안 되는 듯 하다. 적어도 내가 마지막으로 갔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아무튼 잡설은 그만하고 이곳도 한번 가봐라. 두 번째부터는 다리에 모터가 달린 듯 본인도 모르게 이곳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매운 짬뽕집은 1호선 신길역에서 7,8분 거리에 있다. 



3. 매운 돈가스(신대방 3거리)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 필자는 23세 때 신길동에서 상도동으로 이사를 와서 현재도 상도동에 살고 있다. 참 이상한 게 원래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그런지 전국의 베스트 10 안에 드는 매운 맛집 중 한 곳은 늘 필자의 동네에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사를 와서 동네탐방을 하다가 매운 돈가스를 파는 돈가스집을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돈가스가 매워봤자 얼마나 맵겠어.’ 하고 피식 웃으며 들어갔다. 하지만 인간의 비극 중 대부분은 호기심에서 발생한다. 공포영화중 등장인물이 호기심 삼아 나아간 길에는 늘 ‘꼴까닥’을 하게 되고야마는 공식 아닌 공식이 있듯이...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돈가스를 한번 맛보는 순간 ‘꼴까닥’ 이었다. ‘맵다. 진짜 맵다. 당신의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매운 만큼 중독성이 있다. 매운 만큼 맛이 있다. 여름철에 한번 먹어봐라. 땀으로 샤워한 듯한 느낌은 기본이며 한 입 한 입 아그작 아그작 씹을 때마다 온 몸에 숨어있는 아드레날린이 죄다 살아나는 느낌일 것이다. 맞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느낌. 바로 이 느낌이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운 돈가스, 어떻게 상상하든 당신의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매운 돈가스집은 신대방3거리 역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쿵! 



4. 매운 닭발 (노량진 동작구청 부근)



  필자가 30년 이상 살아오며 이제껏 인생의 닭발집을 두 곳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안양시장 안에 있는 매운 닭발집이고 다른 한 곳은 노량진 동작구청에 있는 매운 닭발집이다. 매운 맛의 으뜸이라 함은 전자를 말할 수 있겠지만 안양시장의 닭발집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간 것 같은지라 노량진 닭발집을 말해보겠다. 노량진 닭발집은 워낙에 유명한 곳이라 아마 이것을 보며는 분들은 ‘아~ 여기’ 이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필자가 안양시장에서 먹었던 매운 닭발의 맛을 못 잊고 있을 시절, 안양시장의 닭발집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그 어떤 닭발집도 필자의 입맛을 만족시켜주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 선배의 추천으로 노량진의 닭발집을 가게 되었다. 거기서 필자는 안양시장의 닭발 맛을 보고 싶어 맵게 해달라고 했다. 한 입 먹어본 순간. 그 1초도 안 되는 바로 그 순간 결심했다. 앞으로 닭발을 먹고 싶을 때는 이곳만을 향하겠노라, 하고 말이다. 이곳을 강력 추천했던 선배는 KBS성우인데도 불구하고 이 닭발을 먹자마자 짐승 같은 포효를 하였다. 깔끔한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여하튼 이곳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가 즐겨 먹는다. 그만큼 이미 닭발집으로는 높은 서열로 매겨지는 곳 중에 하나다. 내 혀가 보장한다. 우두둑 우두둑 하며 씹는 순간에도 입 안에서는 열이 타오르는 묘한 맛있음을 느낄 것이다. 흑흑. 이걸 쓰는 와중에도 닭발이 생각난다. 한번 먹으면 잊지 못할 그 맛. 여기 또한 여름철 이열치열을 제대로 느껴보길 원한다면 강추하는 바이다! 필자가 추천하는 매운 닭발집은 노량진 동작구청에서 2분 거리에 있다.


   

5. 매떡: 일명, 매운 떡볶이 ^^ (부산 범일동)




  드디어 서울을 벗어났다. 필자가 지금껏 서울에서만 살아와서 그런지 이열치열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매운맛집 중 대다수가 서울에 위치한 맛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드디어 서울을 벗어나 부산의 매운맛집을 소개한다. 언제였던가. 지금으로부터 한 4년 정도 된 것 같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 재학중이었던 시절,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에 대학원에서 단체로 부산을 향했다. 매운 맛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필자는 이번에도 역시나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매운 맛집을 찾아봤다. 그러던 중 부산에서 자란 대학원 선배의 추천으로 매떡을 알게 되었다. 부산에서는 최고 맵다고 칭하는 떡볶이요. 전국에서도 최고 매울 거라고 자신하는 떡볶이란다. 다시 한 번 호기심이 작동했다. 원체 떡볶이를 좋아하는 필자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매떡’으로 향했다. 보자마자 느낀 건 ‘진짜 빨갛다’ 는 것이었다. 매운맛집의 대표음식들은 언제나 시각적으로도 그 위엄이 훨훨 풍긴다. 이것을 한 입 먹어보는 순간 필자가 느낀 것은 ‘ 떡볶이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떡볶이를 최초로 만든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기네스북에 올려야해. ’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떡볶이를 최초로 만든 사람에 의해 오늘날 이런 엄청나게 업그레이드 된 매운 떡볶이를 먹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 이걸 쓰면서 또 다시 매운 맛집의 탐방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매운 떡볶이의 진수를 보고 싶다면 두말 할 것 없이 부산 범일동의 매떡을 소개한다. 이상, 한민규의 매운 맛집 베스트 5! 종료! 


‘후루룩 쩝,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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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의 즐거움 BEST5

  은행이나 우체국 같은 공공 기관에 무작정 들어가 대기 번호표 뽑고 앉아 있기. 얼음 가득 담은 세수 대야에 발 담구고 선풍기 바람 쐬기. 수박이나 참외 같은 수분 많은 과일을 골라 화채 만들어 먹기. 자주 샤워하고 취침 시 죽부인 안고 자기. 

  위의 문장들은 “더위를 피하는 〇〇가지 방법”을 검색하면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노하우를 옮겨 적은 것 이다. 모두 짧은 시간 내에 체내의 열기를 식혀준다는 점에서 그 효능(?)을 인정받은 방법들이다. 그러나 누구나, 즉시, 따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위의 조치들을 직접 실행으로 옮겨보면, 은근히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가장 오래된 노하우인 ‘공공기관 대기표 스킬’은 수년 전 공공기관 냉난방금지법이 생겨나면서 단박에 그 효력을 잃었다. 그렇다면, 세수 대야에 얼음을 가득 채워 넣고 발을 담구는 방법은? 시도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음을 얼리는 과정부터, 찬물을 섞어 물이 튀지 않도록 대야에 잘 쏟아 넣는 과정, 얼음 때문에 차가워진 세수 대야와 실내의 더운 공기가 만나 대야 표면에 생성된 물은 바닥으로 줄줄 흐르고, 얼음이 녹아 물이 미지근해지면 바닥에 흐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퉁퉁 불은 발을 이끌고 뒤뚱거리며 화장실까지 가야하는 뒤처리 과정까지. 생각만 해도 식었던 땀이 다시 송글, 이마에 맺힐 것만 같다. 그럼, 화채는? 1인 가구에서 수박을 사 먹는 것은 몇 끼의 식사를 포기해야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선택이다. 하물며 과일 화채라니. 게다가 죽부인? 그것은 유치원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서 본 이후로는 티브이 속에서만 존재하는 물건인 것을. 

  불평만 늘어놓다가 더 더워지기 전에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그래서 쟤는 뭘 어쩌자는 거야, 안 그래도 더워서 짜증나 죽겠는데! 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음, 사실부터 고백하자면, 뭔가 파격적인! 한 번도 본적 없는 새로운! 나만의 썸머킬링,킬링타임 노하우를 소개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 봐도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질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해야할 것 같다. 조금 더 솔직해지면, ‘한여름 무더위를 날리는 방법!’에 대해서 이리저리 생각하면 할 수 록, 더울 땐 더워하는 게 정상이지, 왜 자꾸 시원하려고 쓸대 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나 하는 식의, 마치 이 한 세상 하직하려는 사람이 떠올릴 법한, 거대한 체념만이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스멀스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의례, 잔고 끝에 악수를 두고야마는, 그 고질병이 돋은 것이다. 여하튼, 이제는 예전처럼 공공 기관에 의존해 에어컨을 쬘 만큼 냉방기가 희소성을 가지는 세대도 아니고, 집집마다 개인용 에어컨이 설치되어있거나, 하다못해 집에서 몇 미터 떨어진 커피 전문점에만 들러도 문명의 시원한 이기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덥다고 자꾸 무언가를 하는 것 보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도무지 이 글을 쓰는 사람이 할 생각이 아닌-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저 에어컨 밑에 자리 잡고 앉아서 시간아 흘러라 흘러, 조금만 더 버티면 하늘이 높아지고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겠지, 흘러라 시간아, 하는 수밖에. 

 아래 소개하는 책들은 그 인내의 시간을 함께해줄 킬링타임, 타임킬러 도서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기에 감히, ‘시간 학살자’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몇몇 독자들에게는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꼼짝없이 앉아있어야만 하는 독서 경험을 선사 해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독서에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큰 기쁨은 바로 ‘완독의 즐거움’이(여기서는 비판 없이 읽는 독서법인 완독(玩讀)이아니라 처음부터 끝가지 모두 읽는다는 뜻의 완(完)독으로 사용하였다)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이 어렵건 쉽건 간에 손에 쥔 책 한권을 마지막 장까지 읽어내는 기쁨은 분명히 있다. 게다가 책장을 덮고 책꽂이에 다 읽은 책을 다시 꽂아 둘 때면, 어딘지 모르게 빈 것만 같았던 나의 지성이 채워지는 듯한, 지적 풍요로움 마저 얻어갈 수 있다. 그럼 이제, 누구의 의견도 묻지 않은, 그저 필자만의 경험만으로 정해진, 무더운 여름도 잠시 잊게 해줄 만큼 잘 읽히고, 그래서 완독의 즐거움까지 챙겨갈 수 있는, 장르 불문! 일석이조!의 책들을 소개한다. (가나다순)



1. 『보다』, 김영하



  김영하의 산문집. 김영하 작가는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그의 산문 또한 소설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화두들을 김영하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풀어낸 산문을 읽는 즐거움은 그의 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한 크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끝까지 읽기에 안성맞춤. 읽고 마음에 들었다면, 이전에 출간된 산문집들을 일독해볼 것을 추천한다. 『랄랄라 하우스』, 『포스트잇』, 『네가 잃어버린것을 기억하라』등이 있다. 산문 시리즈인 『보다』는 현재 속편인『말하다』까지 출판되어있다.



2. 『자학의 시』, 고다 요시이에



  영화로도 제작된 일본 네 컷 만화 자학의 시. 단 네 컷만으로 이렇게나 커다란 감동을 선사 할 수 있으리라곤 읽기 전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백수 남편과 순종적인 아내사이에서 펼쳐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깔깔거리다가 1권이 끝나갈 때 즈음에는 계속 읽으면 눈물을 멈출 수 가 없을 것 같은 슬픈 예감 때문에 2권을 펼치기가 두려워 그만 덮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끝까지 읽고 싶은 감정을 참을 수 없는, 기괴한 정서적 체험을 겪게 하는 책. 하지만 결국 끝까지 보게 될 것이다. 



3. 『초조한 도시-사진으로 보는 도시의 인문학』, 이영준



  제목에는 인문학 분야라고 쓰여있지만, 인문학 보다는 미술 분야에서 더 유명한 책. 실제로 이영준 작가는 미술 분야에서 비평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한국이라는 국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너무나 독특해서 어떨때는 그로테스크 하게 느껴지기도하는 ‘한국형 도시’의 모습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도시의 한 면을 포착하여 사진으로 보여주고 그에 대한 사유를 모아 묶어낸 책. 이미지가 압도적이어서 금방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완독 후에는 늘 같게만 느껴지던 도시가 어딘가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 『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1996년 5월, 에베레스트에서 조난당한 18명의 행적을 담은 책. 기자 겸 작가인 존 크라카우어가 등반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아 그날의 일을 회상의 형식으로 생생하게 재구성해낸 책이다. 등반대의 행적이 너무나 생생해서, 읽는 사람들까지 실제 에베레스트 등반에 참여한 것처럼 추위를 느끼게 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전해오는 긴박함 때문에 한번 들면 내려놓을 수 없다. 


  

5. 『허삼관 매혈기』, 위화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허삼관 이야기. 솔직히 영화의 여파로, 이 소설이 평가 절하될까봐 걱정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남들 보다 못한 건 참아도, 남들 다 하는 것 못하는 건 참을 수 없다”는 허삼관의 가슴 저미는 이야기를 한 번 읽어 주시기를. 분명 읽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게 될 책이지만, 혹시 중간에 잠시 쉬게 된다면 그건 아마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참기 위해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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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영화 Best3

  어느 날 부턴가 TV에서‘납량특집’이 사라졌다. 무더운 여름 날, 가족들 끼리 모여 수박을 나눠 먹으면서 브라운관 속에서 활약하던 귀신을, 미스터리한 사건을, 가슴 졸이며, 한 쪽에서는 씨를 뱉어가며, 환상과 현실을 오고가는 경험을 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 기억 때문에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은 통 그러한 경험을 하지 못한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가족들과 함께 수박을 나눠 먹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게 살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고 또한 이 현실이 납량특집보다 더 공포스럽기 때문에 웬만한 공포물은 사람들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름이 되면 기대하게 된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 버린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다시 방영되기를, 밤잠을 설치게 했던 <미스터리 극장>을 다시 보게 되기를 말이다. 그러고보니, 나 어릴 적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조차 여름을 맞이하여 재미있는 기획을 한 적이 있다. 지금 기억나기로 타이틀은 아마도 <피의 전설, 드라큐라>였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지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드라큐라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프로그램은 드라큐라의 실재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고 결론을 지었지만 그 후로 나는 드라큐라로 대표되는 흡혈인간에 대해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로 흡혈 관련 영화나 드라마, 다큐를 꾸준히 챙겨보는 사람이 되었고, 여름만 되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시금 보았던 영화를 꺼내보고는 한다. 무더운 여름 날,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고 흡혈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름을 잘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괜히 뿌듯하기 까지 하다. 그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고자 나만의 흡혈영화 Best 3를 공개한다. 



1.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단언컨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톰 크루즈가 가장 섹시하게 나오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뱀파이어로 등장하는데, 선악의 대립이 분명한 영화다. 톰 크루즈는 나쁜 뱀파이어, 브래드 피트는 조금은 착한 뱀파이어. 물론 여기서 착하다는 의미는 인간의 피를 먹고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니, 브래드 피트는 동물들의 피를 먹고 사는데 그렇게 먹고 살다보니,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까지 퍼붓는다. 그것도 다 브래드 피트 뱀파이어가 오래 살다보니 하는 질문이다. 결국에는 현대에 와서 어떤 작가를 만나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이다. 아름다운 외모의 뱀파이어의 일생이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놓치지 않기를.  



2.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  




  하하하. 웃음이 나온다. 이 흡혈 영화는 한 마디로 ‘병맛 흡혈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매 장면 마다 실소가 터져 나온다. 1932년 빈을 배경으로 한 노스페라투 부부의 이야기인데, 남편 흡혈귀가 정신 상담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담당 의사는 아마도 프로이트일거라고 짐작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다. 남편 흡혈귀는 몇 백년 전에 사망한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고, 그 여자가 환생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지긋지긋한 결혼 생활일거라고 판단되는데, 아내 흡혈귀는 끊임없이 남편에게 자신의 외모를 묘사해 볼 것을 요구한다. 그 이유는 흡혈귀의 모습은 거울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는 몇 백 년 동안이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오직 남편의 입을 통해서만 자신의 외모를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초상화가를 통해 그림을 부탁해 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모두들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러한 위기의 부부에게 어느 날 사건이 터진다. 남편 흡혈귀에게는 드디어 첫사랑의 모습을 한 여인이, 아내 흡혈귀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화가가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과연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을까? 결말이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챙겨보길 바란다. 깨알 같은 재미가 콕콕 박혀있다. 



3. 흡혈식물대소동 




  흡혈식물대소동이라고 국내에 알려진 이 영화의 원 제목은 <Little shop of Horrors>다. 이 영화에서 흡혈하는 존재는 동물이 아닌 식물인데, 주제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품고 있다. 하지만 장르는 B급 코미디. 미국 B급 영화의 대부 로저 코먼이 만든 1960년 작품과 뮤지컬 코미디로 다시 풀어낸 1986년 작품이 있다. 두 작품 모두 강력 추천하지만 1986년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가 조금은 더 대중적이다. 내용은 작은 꽃집의 점원 시모어가 우연히 발견한 식물을 가게에 들여 놓게 된다. 시모어는 그 식물에게 자신이 짝사랑하던 여인의 이름을 따서 ‘오드리 Ⅱ'라고 짓는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식물에게 매료되고 가게와 시모어는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하지만 식물 오드리에게는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사람의 피를 먹어야 하는 흡혈식물이라는 것이다. 시모어는 식물 오드리는 위해서 지속적으로 피를 갖다 바쳐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과연... 시모어는 이 위기를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식물 오드리가 아닌 인간 오드리는 시모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코미디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숨겨진 걸작이다. 한 가지 더. 미국의 B급 코미디를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로저 코먼의 작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내가 생각하기로 로저 코먼의 걸작은 <흡혈식물대소동>이 아니라, <토마토 공격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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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추리 소설 걸작 BEST3

무더운 여름 날 선풍기 틀어놓은 방 안에서 추리소설을 쌓아 놓고 읽는 것만큼 가성비가 좋은 피서방법은 없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추리 소설은 빠져든다. 심리적인 차원에서 추리 소설은 일종의 대리 범죄물이다. 인간의 무의식에 포함된 이드(공격적 동력)을 대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기제로서 추리 소설이 이용된다. 더불어 심리학자 찰스 라이크로포트 박사는 추리 소설이 유아기의 원초적 장면에 대한 투사물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자는 탐정인 동시에 범인이고 이상적인 추리 소설에서 탐정 또는 영웅은 자신이 쫓던 범인이 결국 자기 자신임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로이 풀러는 추리소설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대리물로서 추리 소설의 마술적 기능이 있다고 보았다. 즉, 추리소설은 인간의 근본적인 심리적 요구를 가장 잘 이해해서, 간지러운 부분을 효과적으로 해소해주는 대리물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맺혀있던 욕망들을 해소해준다니, 그야말로 피서에 적격이지 않은가. 

이러한 추리소설들 중, 더운 여름밤을 날려줄만큼 흥미진진한 명작 베스트 3를 꼽아보았다.


1) 애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 



  애드거 앨런 포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의 소설은 일종의 추리소설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 중 가장 빛나는 단편을 모아 놓은 <도둑맞은 편지>는 인간의 공포가 어떤 지점에서 발화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쓴 작품이다. 인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욕망들을 꺼내, 그것을 미스터리로 승화시키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책이 가볍고 얇아 휴가지에 부담없이 간편하게 챙겨 가기도 좋다. 



2) 아서 코난 도일 <주홍색 연구>




  코난 도일이 창조해낸 ‘홈즈’는 추리소설의 대명사이자 아직까지도 탐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캐릭터이다. 뭔가 치명적이고 엉뚱한 성격에, 마약을 즐기며, 얼핏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건의 모든 것을 파악해버리는 홈즈. 100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는 이 매력적인 캐릭터의 효시를 알리는 작품이 바로 <주홍색 연구>이다. 왓슨 박사와 홈즈의 첫 만남부터 모르몬 교의 역사와 함께 하는 장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이 작품은 단연코 도일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또한 셜록 홈즈는 뛰어난 캐릭터 성을 기반으로 인접 예술 장르로도 많이 재해석 돼 있는데, 영국 드라마 <셜록>, 영화 <셜록 홈즈> 시리즈와, 미국 드라마 <엘리멘트리> 등이 최근의 작품이다. 이들 작품들과 함께 비교해가며 읽으면 더욱 알차게 홈즈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3) 애거서 크리스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추리 소설 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가장 인기리에, 가장 오랫동안 집필한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코 애거서 크리스티를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생전에도 영국 여왕에게 데임 작위를 수여받을 만큼 큰 인기와 영예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생후에도 전 세계 각국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80권의 넘는 그녀의 작품들 중 퀄리티가 떨어지는 작품은 없다. 그녀는 특유의 탄탄한 플롯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첨예한 갈등을 만들어내는 작가이다. 그 많은 수작들 중 이 작품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그야 말로 반전의 묘미가 살아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흔드는, 획기적인 방식의 이 소설은 추리소설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식 자체에 대한 회의를 하게 만든다. 



4) +α


위의 유명 소설들을 이미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비교적 최근에 발간된 핫한 추리소설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동시대 감각이 살아있는 작품을 통해 서늘한 공포와 서스펜스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마가렛 밀러 <내안의 야수> 

마고 베넷 <바스의 미망인>

제임스 엘로이 <LA 컨피덴셜>

루스 랜들 <활자 잔혹극> 


자, 이제 추리소설과 함께 여름밤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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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해버리고 싶은, 취해지지 않는

  남자만큼 남자를 싫어하는 동물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남자에 한한 그렇다. 

  “브라더 로맨스라고?” 아니나 다를까 가장 가까운 남자 동물에게 물어봤더니 일단 표정부터 구기고 본다. “왜 싫은데?” 내가 물었다. 이유나 들어볼까 해서. “그냥, 그냥 싫은데.” 더 물어봐야 따져봐야, 별반 다른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저 단호한 얼굴. 남자들은 왜 그토록 서로 탐탁치 않아할까? 영화나 드라마 말고, 현실 세계에 브로맨스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아니다, 다시 꼼꼼히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그들이 정녕 진심으로 서로를 싫어하나? 섣불리 단정 짓기엔 아직 이르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방법을 깜빡 잊어버린 것 일지도 모른다. 그저 ‘싫더라’ 하는 말만 믿고 수긍하기엔 내가 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금요일 밤 종로 거리를 걸어 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남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술에 취해 남자 둘이 팔짱 끼고 걷는 장면은 애교 수준이고, 그날엔 인도에 걸터앉아 어깨를 맞대고 누구 하나 술이 깰 때까지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다정한 투 샷,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부둥켜안고 뒤뚱거리는 찐한 모습까지 모두 어렵지 않게 발견 할 수 있다. 어느 날씨 좋은 주말 저녁, 나는 광화문에서 시작해 청계천 길을 따라 종로 방향으로 산책하다가 한 시간 동안 무려 다섯 팀의 남남 커플을 목격한 적도 있다. 물론 그들 역시 약간 취해있었다. 그날은 좀 독특한 날이었는지,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서로를 너무나 좋아하는 중년 남자 둘도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상대방의 허리에 팔을 두른 채로 둘이 동시에 버스에 오르려고 낑낑대고 있었다. 한 사람은 얼굴이 벌건 채로 그저 실실 웃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욧시! 요옷시! 가자아!” 하며, 혹은 그 외의 알아들을 수 없는 다양한 소리들을 반복해서 질러대면서, 버스 문턱을 올랐다가 몸이 끼어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보는 사람이야 어찌 되었든 당사자들만큼은 상대의 몸을 꼭 붙든 채로 참 즐거워 보였다. 


영화 [행오버] 

  

 알딸딸한 남자들이 만들어낸 애정 어린 컷들은, 말하자면, 이런 것 말고도 꽤 많다. 왜 그러는 걸까? 멀쩡할 때는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여도 우연히 손이 스쳤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불쾌해하며 욕부터 하던 그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남자는 ‘원래’, ‘본능적으로’ 남자를 싫어한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여자 역시 자기보다 어리고 예쁜 여자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경계하니까. 하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친한 여자끼리라도 보기 힘든, 끈끈한 우정이랄까 뭐, 닭살 돋지만 그런 종류의 로맨틱한 관계는 분명 존재해 보인다. 요즘에야 ‘브라더 로맨스’라는 말이 말 그대로 젊고 아름다운 두 남자 배우들이 드라마 속에 등장해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몹시 힘겨워하다가 그들 간에 느끼는 애정(애틋한 감정)을 대변하는 단어로 주로 쓰이지만, 예전에도 그랬을까. 여성이 주된 소비층이기 이전의 ‘브라더 로맨스’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야말로 남자들의 로망을 대변해주는 장르랄까. 

  좀 오래됐지만 비근한 예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그 시초로 들고 싶다. 남자들의 브라더 로망을 대변해 주는 것은 전쟁 영화가 그 몫을 톡톡히 했다.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로맨스란 죽음 직전의 극한 상황에 가서야 빛을 발하는(?) 그런 종류의 거창한 것이었다. 시시콜콜하게, 계집애마냥 ‘우리 친하게 지내~’라고 말하며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그들에게 용납되지 않기에 겉으로는 싫다고 말하면서, 전쟁과 같은 극단적이고도 대의적인 명분이 충분한 상황을 빌어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맘껏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영화 [행오버]


  전쟁 영화뿐만이 아니다. 남자들은 여자에게 하는 것과는 달리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인색해서, 여러 영화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가깝게 지내고 싶은-맘에 드는-남자에게 다가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다호>의 주인공 마이크는 스콧에게 약에 취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마스터>의 프레디 역시 우연히 배에 탑승했다가 만난 랭케스터와 나눴던 대화를 잊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제조한 술을 핑계로 랭케스터를 찾아와 그것을 나눠 마시면서 그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을 표시한다. 이른바 ‘브라더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들에는 이처럼 무엇인가에 취해서 혹은 그 물건의 힘을 빌어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려는 남자 주인공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등장한다. 

  술에 취해 남자들끼리의 우정이 끈끈하다 못해 끈적끈적해질 만큼 솟구치는 영화로는 <행오버>만한 것이 없다. 총각 파티를 떠나는 차안에서 그들은 대체로 심드렁한 표정이다. 하지만 만취한 그들의 모습은 어떤가. 결혼식 주인공이 생사도 모른 채 사라졌다는 설정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이 술에 취해 했던 행동들과, 그 만행을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비로소 숨겨왔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아무리 길게 이야기 한다 한들, 남자들에게 브로맨스에 대해 물으면 여전히 관심 없다는 투로 일관할 것이다. 내가 아는 남자에 한한 그렇다. 결국 뻔 한 이야기이지만, 어떤 남자에게는 브라더 간의 로맨스란 드라마나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전할만큼 취하지 못해서 그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이인성의 문장을 따라 표현하자면, 취해버리고 싶은데 완전히 취해지지는 않는 그런 감정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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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지속되는 로맨스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누군가는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다. 서로의 신뢰는 무너지고, 지금까지 쌓아온 추억보다는 현재 관계를 비트는 불쾌한 감정만이 더 중요해진다.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 중요한 감정들의 색은 사라지고 그것을 도저히 추억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관계가 틀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상대에 대해 다른 기억을 하기 시작하고 그 중요성도 달라져 버린다. 연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내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을 연인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친구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는 애인의 그것과 같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대충 메우고 가벼운 농담만을 늘어놓을 목적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내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고민하고 같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느낌을 받는 사이는 ‘언제라도 보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앞으로도 내 생의 일부를 이 친구와 함께 보내겠다는 무언의 믿음과도 같다. 연인과 헤어질 때 사람들은 깊은 아픔을 겪지만,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질 때도 상처를 받는다. 만일 그 친구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거나 혹은 내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라면 그 아픔과 고통은 연인을 잊는 것만큼이나 괴로운 일이다. 과연 잊혀질 수 있는 일일까. 우리는 연인을 잊는 방법과 그 시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친구를 잃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사랑이 식거나 감정이 변해서 달라지는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친구는 마치 영원히 내 곁에 존재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변하고 달라지는 것은 한 순간이며, 신뢰는 냉정하게 무너진다. 연인이든 친구든, 잃어버린 누군가를 되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브로맨스는 마치 연인과 친구의 경계에 있는 어떤 감정을 이야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남녀가 확보할 수 없는 어떤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관계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어떤 관계에 대한 환상이 부여된 것은 아닐까. 브로맨스의 관계는 친구이지만 사랑처럼 애틋하고 전우처럼 짙은 신뢰가 깔려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진지하게 최선을 다한다. 이것은 친구야말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이며 연인만큼 짙은 감정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브로크벡 마운틴에서 두 남자 연인이 사랑하기 전에, 친구로 지낸 깊은 시간이 꼼꼼하게 전개하던 것을 기억하자. 그들의 사랑이 지지받을 수 있었던 것은, 친구 즉 인간적인 신뢰로 맺어진 관계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해 없이 그 사랑을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혹은 그래야 한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녀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연애초기에 실패한 경험들을 떠올려보자.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신뢰였고, 감정은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것이며 연인을 지키는 것은 친구와의 우정을 지속시키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늘 깨닫게 되지 않는가. 반대로 친구와의 관계 역시 연인을 대하는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를 잃었을 때 사랑에 실패한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걸 알게 되지 않는가. 그렇게 브로맨스는 영원히 지속되는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은유가 된다. 누군가를 쉽게 사랑하는 것도 믿는 것도 두려워진 세계에서 상대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노력으로 지속되는 브로맨스는 결국 흔들리지 않는 관계에 대한 소망을 함축하고 있다. 내 등을 지켜줄 누군가 있다는 것, 그것은 믿음에 관한 것이다. 불안하지도 겁이 나지도 않는 세계. 유일한 나의 편과 나 자신 역시 누군가의 유일한 편이 되는 이야기. 그것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지우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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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의 다양한 변주

브로맨스는 브라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합친 신조어로, 남성 간의 애틋한 감정 또는 관계를 뜻한다. 여기서 나는 브로맨스라 함은 과연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흔히들 브로맨스라 함은 동성간의 사랑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주변 사람들한테 브로맨스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연상되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대부분 처음 떠오른 생각은 ‘동성애 아니냐’는 대답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브로맨스를 의미함에 있어 ‘브라더’ 즉, 피를 나눈 ‘형제애’라는 단어를 먼저 내세우고 싶다. 이성간의 교제를 하다보면 아무리 깊은 관계라 할지라도 이성보다도 동성끼리 더 소통이 잘되는 이야기코드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남성으로서 살아오며 헤쳐 온 수많은 고난과 역경들이 남성과 남성, 즉 동성은 이성 관계와 달리 말하지 않아도 사회적 유대관계를 통하여 느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즉, 백언불여일행(百言不如一行), 백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더 중요하듯이 남성으로서 살아오며 숱한 사회적 경험을 헤쳐 온 남성이 남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이 소통이 되는 이야기소재라는 것은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며 성적인 농도 짙은 농담 같은 이야기 소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으로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모든 소통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결혼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잉꼬부부라 할지라도 남편은 자신이 남성으로 살아가며 사회로부터 받은 억압을 소통함에 있어 부인보다도 친구, 스승, 상사, 동료 등을 찾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부인이 소통의 대상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함에 있어 같은 남성으로서 살아오며 숱한 사회적 경험을 한 동질의 남성이 유대관계가 더 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남성’을 넘어 ‘피를 나눈 형제’라는 말도 더하고 싶다. 형제라 함은 피라는 성질을 나눈 남성들이다. 피라는 것은 가족관계를 뜻할 수도 있으나, 필자는 앞서 칼럼에서도 가족이라 함은 ‘동반자로서의 여정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후에야 형성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생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것도 내 생각에 비추어본다면 똑같은 공식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즉, 형제라 함은 같은 남성으로서 동반자라는 여정의 통과의례를 거친 둘 이상의 관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반자로서의 여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로맨스는 이성간의 ‘사랑’ 보다도 남성적 사회적 동질감으로 얻어지는 유대관계와 남성으로서, 동반자로서의 여정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후에 형성되는 진한 형재애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로맨스’ 하여금 이것은 혈연 그 이상의 형재애로 아니면 동성애로, 동료애로 확장될 수 있다. 


  최근에 필자는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하는 M.Butterfly를 본 적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르네 갈리마르는 오페라 나비 부인의 여주인공 ‘송 릴링’의 도도하며 우아한 자태에 매료되고 ‘송’과의 만남이 계속 될수록 동양 여성의 신비로움에 빠져들며 그녀와의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르네 갈리마르는 송 릴링이 스파이로서 여성으로 변장한 남성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송 릴링에 대한 사랑은 멈추지 못하고 결국 자살의 길에 이르게 된다. 


뮤지컬 [M.Butterfly] 공연사진


  관객들은 이 작품을 보며 르네갈리마르의 사랑을 하나같이 응원했다. 그 이유가 과연 동성애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이 둘을 이렇게 만든 슬픈 사회적 관계 때문이었을까?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관객이 르네갈리마르를 응원하게 된 이유는 르네 갈리마르라는 남성에게 있어 송 릴링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남성만의 깊은 고독을 남성으로서 공유할 수 있으며 여성의 역할까지도 할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도 르네갈리마르는 송 릴링에게 여성과 얘기하는 듯한 은밀한 이야기 소재에서부터 남성들이 겪는 사회가 요구하는 명예욕에 대한 이야기 소재 등 모든 것을 소통한다. 이것을 완벽에 가까운 사랑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필자는 이것 또한 ‘브로맨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즉, 브로맨스라 함은  동료애, 형제애, 동성애로 모두 확장될 수 있으며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같은 남성으로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 온 여정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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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브로맨스

<펄프픽션>에서 <황혼에서 새벽까지> 그리고 <킹스맨>  


일반적으로 B급 영화는 적은 예산을 들인 영화나 A급 영화와 견주어 질적으로 떨어지는 영화를 의미한다. B급 영화의 탄생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이루어졌다. 불황이 닥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헐리웃 스튜디오가 저예산으로 단시일 안에 수익을 볼 수 있는 영화, 특히 극장 끼워 팔기 상영에 적합한 영화를 다량으로 생산하게 된다. 이렇듯 끼워 팔기용 저예산 영화가 대량 양산됨에 따라 B급 영화의 양적 기원이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B급 영화 [B movie, -級映畵] (영화사전, 2004. 9. 30., propaganda)


영화 [펄프픽션]


시간이 흘러 영화 산업의 부흥기를 지나오면서 B급 영화는 단순히 상업적인 차원에서의 저예산 영화를 의미하는 것에서 나아가 주류 영화가 포용하지 못하는 대안적이고 키치적인 내용을 담는 일정한 ‘장르’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헐리웃의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경우 상업적인 규모에서나, 감독의 입지로서 주류의 감독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기원은 철저히 B급 영화의 정서에 기대고 있다. 그의 초기작 <펄프픽션>은 영화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브로맨스’의 관점에서도 매우 기념비적인 B급 영화이다. 이 작품 속 존트라볼타가 분한 ‘빈센트’와 사무엘 젝슨이 분한 ‘줄스’는 특유의 끈끈한 브로맨스십을 바탕으로 함께 인질극과 모종의 ‘우발적 살인 사건’에 동참하게 된다. 이들은 같은 조직에 속해 있으며, 조직의 보스에게 그다지 신임을 받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들인 동시에, 특유의 모자람을 바탕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애틋한 관계는 서로의 결핍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위기 상황에서 극대화된다. 이는 B급 장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도이다. 

<황혼에서 새벽까지>는 서스펜스 넘치는 느와르풍 인질극에서 시작해, 좀비물로 끝나는 대표적 B급 감성의 영화이다. 이 영화 속 세스(조지 클루니)와 리차드(쿠엔틴 타란티노)의 경우 <펄프픽션>의 빈센트와 줄스의 관계양상과 유사한, 브로맨스십을 형성하고 있다. 


친 형제인 세스와 리차드는 무자비하게 사람을 살해하는 매정한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바보처럼 비춰질만큼 순박하기도 하다. 또한 형제로서 서로의 안위를 매우 걱정해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애정표현을 하는 등 입체적인 캐릭터성을 갖춘 캐릭터들이다. 앞서 언급한 <펄프픽션>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로 분한 것도 이러한 캐릭터의 유사성을 설명할 수 있는 작은 단서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 두 B급 영화에서만 이런 양상의 브로맨스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킹스맨]


대표적 B급 영화 <킥애즈>를 연출한 매튜본 감독이 콜린 퍼스와 함께 첩보물을 내놓는다고 했을 때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는 올 상반기 가장 흥행한 영화중 하나가 되었다. 이 영화는 감독이 <킥애즈> 속에서 보여주었던 B급 영화의 정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A급의 세련된 화면과 액션, 007로 대표되는 액션 영화의 고전적 스토리라인을 조합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인 해리(콜린 퍼스)와 애그시(태론 에거튼)의 경우 앞서 말했던 비주류로서의 남성 주인공 둘이 동료로 뭉쳐, 끈끈한 동지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위의 작품들과 같은 양상의 브로맨스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아가 이 작품 속에서 둘은 사제의 관계와 ‘부자의 동일시’의 경지 까지 느껴질만한 성장기를 첨부함으로써 B급 장르적 코믹한 브로맨스십에서 모종의 감동까지 느낄 수 있도록 세련되게 장치해 놓았다. 이는 B급 영화의 장르적 발전이자, B급 영화 속 브로맨스가 어떤 양상으로 응용되어져 왔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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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복수, 가문의 비극

  아이스퀼로스의 희곡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을 보자. 오레스테스는 고민한다. 자기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인 자들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원수가 누구인가. 자기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와 그녀의 정부(아이기스토스)가 아닌가. 그러자 아폴로는 소리친다. 


“가라, 너는 복수를 해야만 한다. 그것은 미덕도 아니고, 너의 선택도 아니다. 그것은 의무다.

의무를 행하지 않는 것은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너는 벌을 받을 것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지 않는 자에게 준비된 것은 신의 징벌이다, 가라!” 


  그러자 오레스테스는 묻는다. 


  “그렇지만, 그녀는 제 어머니입니다. 친족살해 역시 이치를 거스르는 것.

저는 분명 복수의 여신들에게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 역시 큰 죄입니다.”




  오레스테스는 두려움에 몸을 떤다. 그에게 남은 것은 복수하지 않고 신의 벌을 받는 것과 복수하고 신의 벌을 받는 것, 두 가지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고통이다. 고통의 본질이다. 선택은 허위다. 어떤 선택도 고통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오직 하나다. 고통. 고통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그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피다. 붉은 피 안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그것은 고통이란 이름의 미래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분명한 사실은 어제는 태어났고 내일은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죽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씨가 만나 이 세상에 나왔다는 한 가지는 안다. 그것이 운명이다. 그것이 고통이다. 가족이 고통이다. 가족만이 운명이다. 


  오레스테스의 아버지 아가멤논은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한다. 아이기스토스의 아버지 티에스테스는 아가멤논에게 쫓겨나 비참하게 죽는다. 티에스테스는 아이기스토스를 시켜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를 죽인다. 아트레우스는 자기 동생 티에스테스의 자식들을 삶아서 동생에게 먹인다.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는 어머니의 명에 따라 이복형제를 죽인다. 아트레우스의 티에스테스의 아버지는 펠롭스다. 펠롭스는 자신의 아버지 탄탈로스에 의해 죽임을 당해 요리로 만들어진다. 신들은 펠롭스를 되살려낸다. 이게 이 가문의 운명이다. 이들의 운명, 거스를 수 없는 그 중력은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서 자행된다. 만약 아트레우스가 다른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티에스테스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기스토스가 다른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자기 사촌인 아가멤논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이기스토스는 자기 조카인 오레스테스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에게 고통스럽게 쫓겨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족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몸에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있는 것이 아닌가. 고통의 근원에 애착을 갖게 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친족 간의 협력이 자신과 유사한 유전자가 확산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친족간의 애착의 원인이 고작 유전자 때문이라니. 나는 믿을 수 없다. 유전자가 아닐 것이다. 유전자 따위는 유전자 따위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내가 미워해야만 할 대상을 좋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 인류에겐, 우리에겐, 나에겐, 아니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에게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렇게 슬프게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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